
글 _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은 그 발전 과정에서 특이한 것이 있다. 자발적인 커뮤니티를 매우 강조한다는 점이다. 인터넷 시대 초창기에 이베이를 중심으로 개인이나 소규모 판매자를 위한 결제 솔루션으로 페이팔이 급성장했었다. 많은 사용자가 몰렸지만 특별히 커뮤니티라는 개념으로 사용자를 묶지는 않았다.
신용 카드를 대신해서 인터넷 환경에서 사용하기 쉬운 지불 수단이라는 유틸리티와 그것을 소비하는 사용자와 인프라를 제공하는 서비스 업자라는 비즈니스 관계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반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등장은 출발부터가 커뮤니티 기반이다. 왜 그럴까? 불환 지폐인 법정 화폐가 지불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국가(또는 그에 준하는 기관)가 보증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주식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은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기업의 실체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암호화폐의 가치는 누가 어떻게 보증하나? 암호화폐의 가치는 국가가 보증하는 것도 아니고 뒤에 이윤을 내는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암호화폐 가치의 근거는 그 커뮤니티 자체에서 비롯된다.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그 네트워크를 자발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구성원의 네트워크 자체가 가치의 근원이다. 물론 이 네트워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무결성과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학적 알고리즘에 기반한 프로토콜이 존재해야 하고 그 프로토콜을 구현하는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애초에 커뮤니티가 없다면 네트워크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결국 암호화폐가 만들어내는 기능적 유용성과 가치는 바로 탈중앙화된 참여자의 합의에 따라 구성된 커뮤니티 네트워크 자신이다. 커뮤니티는 서비스 공급 주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사용하는 사용자 개념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개념이고 스스로 규칙과 시스템을 만들어감과 동시에 이를 사용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주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암호화폐나 퍼블릭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가진 “내재적” 가치를 상대적으로 평가해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것이 가진 커뮤니티의 크기와 활성화 정도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커뮤니티라고 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커뮤니티의 크기가 단순히 사용자 수로 치환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용자 수(지갑 수)와 트랜잭션 수는 당연히 네트워크 활성도를 알아보는 좋은 지표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측면들도 있다. 얼마나 많은 개발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독립적인 프로젝트들이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지, 지역적 국가적 영역을 넘어서서 얼마나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생산자적 측면과 능동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더리움은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수의 개발자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고 다파이의 확산과 더불어 가장 많은 수의 액티브한 프로젝트들로 구성된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일 단위 액티브한 주소 수나 트랜잭션 양에 있어서도 이더리움이 비트코인을 앞선 지는 한참 되었다. 다만 비트코인이 가진 상징적인 선점 효과와 가치 저장 수단이라는 프레임이 아직은 매우 유효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은 그 코인의 가치는 전체 커뮤니티의 양적, 질적 가치에 비례할 수 밖에 없다.
서로 다른 네트워크 간에 브릿지 같은 연결 통로가 늘어나고 애초에 이종의 체인을 연결하고자 하는 인터체인 프로젝트들도 활발히 진행되기 때문에 각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좀 더 넓은 규모의 네트워크로 융합 내지 통합의 방향으로 진행할 가능성도 높다. 비트코인이 이더리움 디파이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랩핑된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되면서 비트코인은 여러 이더리움 디파이에서 기본적인 코인의 하나로 유통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비트코인을 기축통화로 사용해서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이라는 페어 단위로 거래를 하는 곳이 많았지만 현재 디파이에서는 이더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기반한 스테이블 토큰들이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코인 거래 시장에서 비트코인이 차지하던 기축 통화의 역할은 많이 축소되었다.
이더리움 커뮤니티도 이제 동질적인 단일한 커뮤니티라고 하기에는 외연이 많이 확장되었고 관심 영역에 따라 커뮤니티의 존재 양식도 많이 다양화되고 있다. 아무래도 디파이가 현재 가장 인기가 있는 주제다 보니 이와 관련된 각종 서비스가 많이 등장했고 이를 중심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반면 가스비가 급등하는 바람에 다른 영역의 애플리케이션은 이더리움 메인넷을 사용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대폭적인 확장성의 개선을 가져올 이더리움 2.0이 완성되기 전까지 아직도 몇 년이라는 시간상의 공백이 남아 있고 이를 메꾸기 위한 레이어2 솔루션이나 사이드체인 솔루션도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 이더리움 메인넷을 최종적인 보안 레이어로서 이용하는 레이어2 솔루션이 원칙적으로는 훨씬 더 바람직한 모델이지만 구현상의 어려움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발 속도나 범용적인 활용 면에서는 사이드체인보다 뒤처져 있다.
레이어2와 사이드체인 솔루션들이 빠르게 시장으로 진입하면서 가스비 때문에 디파이에 밀려 다소 소외되었던 이더리움 기반 게임 커뮤니티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NFT를 게임 아이템에 적용하는 시도 외에도 게임의 메인 규칙을 스마트 컨트랙으로 옮기거나 게임 데이터를 영지식 증명을 사용해 퍼블릭 체인에서 검증을 하면서도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기법이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게임을 디파이와 새로운 토큰 이코노미와 결합시킴으로써 지금까지 시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블록체인 기반 게임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게임에 주로 이용되던 NFT는 그 대상 영역을 디지털 예술과 컨텐츠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예술품, 부동산 같은 실물 자산을 크립토 경제로 편입시키는 메커니즘에도 이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더리움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는 중요한 이슈 중에 가스비와 관련된 주제만큼 민감한 사항도 없다. 기존의 가스비 경매 구조, 비효율적인 가격 산정 방식, 급등한 트랜재션 비용을 일방적으로 채굴자들이 모두 가져가는 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이 광범위하게 제기되어 왔다. 그 결과가 EIP-1559인데 이것이 도입되면 현재 이더리움 메인넷의 높은 가스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많은 부분 합리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미리 정해진 블록 보상으로 신규로 발행되는 이더 외에 가스비로 지불된 이더의 상당 부분이 소각될 예정이다. 가스비로 지불된 이더가 소각되면 그만큼 이더를 보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디플레이션 혜택이 돌아감으로써 이더의 인플레이션율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채굴업자와 채굴풀의 입장에서는 당장에 추가로 얻고 있는 높은 가스비 수익을 양보하는 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가스비가 없이 블록 보상으로 주어지는 이더의 양만으로도 현재의 이더리움 메인넷 보안성에 필요충분한 조건이지만 채굴업자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소 시간이 지연되더라도 이에 대한 논의를 계속 지속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이것은 이더리움 커뮤니티의 탈중앙성을 시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커뮤니티 전체의 이익과 일부 그룹의 개별적 이익이 대립하였을 때 어떻게 이를 해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도 탈중앙화된 커뮤니티가 지속해서 풀어야 할 과제이다.
요즘 거버넌스 주제도 개별 프로젝트 레벨에서는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더리움 메인넷 차원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개별 프로젝트 수준에서 보는 것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개별 프로젝트에서는 코인의 보유량을 기준으로 온체인 투표로 프로젝트의 의사 결정을 하자는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방식이 유행되고 있지만 메인넷 수준에서는 사실 이러한 온체인 투표에 의한 거버넌스가 보안상 위험할 수 있다. 소수 고래의 담합에 의한 네트워크 통제가 훨씬 쉬워진다. 소수의 밸리데이터에게 투표권을 위임하는 DPoS 방식의 거버넌스가 쉽게 고래들의 담합으로 귀결되는 사례를 이미 많이 보아왔다. 이더리움 2.0은 PoS로 가더라도 DPoS 방식의 소수 밸리데이터에 의해 거버넌스 구조가 통제될 수 있는 방식을 배제하려고 한다. 그런 만큼 가변적인 거버넌스 요소를 최대한 없애면서도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네트워크 프로토콜을 만드는 게 그만큼 훨씬 더 어렵고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더리움 커뮤니티가 이더리움 2.0과 PoS로의 전환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더리움 커뮤니티는 현재 그 어떤 블록체인 커뮤니티보다 탈중앙화가치를 가장 중심적인 가치로 두고 있고 중장기적인 긴 호흡으로 생태계의 확장과 발전을 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커뮤니티의 내부 갈등, 해킹과 버그로 인한 혼란, 급변동하는 가격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개발 노력을 중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